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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2-10-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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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천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경북 김천시 ‘보호수 여행’

기사입력 2022-10-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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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백년, 나무는 천년, 바위는 만년을 산다”는 옛 말이 있다. 만물의 영장이요,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가 인간인 듯 보이나, 실상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한 그루, 바윗돌 하나보다도 못 사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경북 김천을 일컬어 예부터 삼산이수의 고장이라 했다. 백두대간 중심에 산과 물이 있어 살기 좋은 고을이라는 말이다. 자연에는 산을 가꾸고 물을 길러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나무이다.

 

백두대간으로부터 지맥, 능선, 심지어 마당 정원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나무가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나무들 중에서도 김천의 역사를 지켜보며 수백 년 세월을 한 자리에 묵묵히 버티어 온 사연 많은 고목으로의 이색 여행을 떠나본다.

 

 


가장 먼저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섬실마을의 섬계서원 뒤뜰에는 약 75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웅장한 은행나무가 버티고 서 있다. 나무 높이 29미터, 밑 둥 둘레는 12미터에 달해 성인이 팔을 잡고 돌 경우 10명이 필요할 정도로 거대한 몸집이다. 1982년 11월 3일 김천의 유일한 천연기념물 제300호로 지정되어 장구한 역사를 간직한 가치 있는 나무로 공인받았다.

 

 


통상 5백년 이상 노거수에서만 볼 수 있는 속칭 나무고드름을 몸체 이곳 저곳에 주렁주렁 달고 있다. 그리고 나무 둥치 한 가운데는 체구가 작은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큰 구멍이 나 있어 그 세월의 흔적을 가늠케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이 마을 아낙이 밭에 가든 중 급한 나머지 호미로 긁어 불을 껐다는 구전이 전하는 것을 볼 때 당시 이미 노거수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섬계서원 은행나무는 일제강점기 섬계서원과 이웃한 다른 문중 소유의 밭과 경계에 위치해 나무의 소유권을 두고 오랜 분쟁이 있었는데, 교육시설인 서원과 학자수로 불리는 은행나무와의 상관성 등이 인정되어 김녕김씨문중 소유로 최종 승소판결을 받아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섬계서원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는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을 지켜보았을 우리나라와 이 고장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것이다.

 

 


그 다음 보호수 여행은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옥동마을 증산면사무소 앞뜰에 있는 경상북도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된 멋들어진 소나무 세 그루이다. 이 터는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도선국사가 서기 850년경 창건한 쌍계사 절터로 증산면사무소를 비롯한 유성리 옥동마을 대부분을 차지한 큰 규모의 사찰터이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던 절은 1951년 7월 14일, 한국전쟁 와중에 북한군의 방화로 소실되고 폐사한 뒤 대부분의 석조물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으나 세 그루의 소나무만이 옛 절터를 수백 년째 지켜오고 있다.

 

이 중 한 그루는 일반적인 소나무에서는 보기 드물게 수양버들처럼 처진 가지를 하고 있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스스로를 낮추는 겸양의 미덕을 갖춘 듯하다.

 

 


도선국사가 처음 절을 지을 때 했다는 “승천년속천년(僧千年俗千年/승려가 천년을 살고 속인이 천년을 살 것)”라는 예언처럼 다시금 부처님을 모실 그날을 기다리며 묵언수행하는 나무보살인 듯 아직까지 자못 근엄하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연안이씨 집성촌인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입구에는 보물 제2047호로 지정된 방초정이라는 정자와 열부 화순최씨의 정려각이 있다. 그 앞으로 최씨담(崔氏潭)이라는 사각형태의 연못이 조성되어있는데 연못 가장자리로 세 그루의 수백 년 된 땅버들나무가 흡사 용이 용트림을 하며 하늘로 승천할 기세를 하고 있다.

 

 


특히 일반적인 땅버들과 달리 화순최씨 문중의 관리와 보호를 받으며 장구한 세월을 지켜오고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그 해에 이 마을로 시집온 화순 최씨 부인이 왜병으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마을 웅덩이에 투신자결한 것을 거룩히 여긴 남편 이정복이 웅덩이를 확장해 사각형태의 연못을 만들고 “최씨 부인의 못”이라는 의미로 최씨담이라 하고 못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땅버들나무를 심은 것이라 전해진다.

 

 


부부지간이라 하더라도 남녀간에 내외(內外)하며 사랑 표현을 금기시하던 유교사회 속에서 피어난 부부지정(夫婦之情)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하늘을 머금은 최씨담 물결만큼이나 아름답기 그지없다.

 

김천을 대표하는 세 그루의 나무는 지금까지도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 쉼이 되고, 장소가 되고 있다. 도망가거나 쓰러지지 않고 오랜 시간 한곳에 있는 우직함과 세월이 쌓여 희로애락의 모습이 주는 거대함에 나무여행은 사람들을 더 차분하게 만든다.

 

자료제공 : 김천문화원 송기동
사진 & 에디터 : 김윤탁



 

와우코리아 (gni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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