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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잿더미 위에 쓰는 희망일지

기사입력 2019-05-0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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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광등을 번쩍이며 줄지어 고속도로를 달리는 소방차의 장엄한 행렬을 본 적이 있으신지. 이름하여 ‘속초로 향하는 영웅들’.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전국에서 밤새워 먼 길을 달려온 소방관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치솟는 불기둥과 강풍을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시뻘건 불덩어리, 자욱한 연기와 뜨거운 열기, 숨통을 막는 매캐한 냄새-불지옥 속에 살신성인의 영웅들이 있었다.

뿐인가. 헬기조차 뜰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분진 마스크 하나에 의존한 채 밤새도록 진화작업에 나섰던 산림청 소속 특수진화대원들도, 방탄모와 마스크를 쓰고 작은 불씨까지 샅샅이 뒤지며 잔불 정리에 나섰던 16,500여 명의 국군 장병들도, 지상의 진화작업에 발맞춰 하늘을 날며 주불 잡기 합동작전을 펼친 헬기 조종사와 밤샘 대기도 마다하지 않고 헬기 정비에 나섰던 정비사도 잊지 말아야 할 영웅들이었다. 

발화지점과 인접한 화약 창고에서 1시간여에 걸쳐 뇌관 2,990발, 폭약 4,984kg, 도폭선 299m를 안전지대로 옮긴 속초경찰서 경찰관들도 영웅이다. 화약 창고는 1시간여에 걸친 이송 작전이 완료된 후 전소됐다.

생업을 접어두고 위험을 무릅쓴 채 배달 오토바이로 주택가 골목골목을 누비며 주민들을 실어 날랐던 인근 식당의 배달원들, 의료원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요양병원 어르신들의 대피를 도와준 경찰관과 시민들, 호스 하나를 들고 밤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물을 뿌려 마을을 지켜낸 이웃, 대피 방송을 하고 전화를 하고 외진 곳에 있는 이웃집까지 뛰어가 화마를 피하게 해 준 통장 부부, 졸지에 집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선뜻 방을 내어 준 숙박업소 주인, 먹을 것 입을 것 덮을 것을 들고 달려와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이 모두 다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적셔 주는 아름다운 영웅들이다.

숨은 영웅은 또 있다. 화마로 삶을 터전을 잃은 이재민을 돕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온정의 손길을 보내온 이들,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아 구슬땀을 흘린 13,893명(5월 1일 기준)의 자원봉사자들, 가장 먼 땅끝마을에서 달려와 진화에 애써준 해남소방서에 감사의 편지와 함께 닭갈비를 보냈다는 춘천의 한 시민, 이재민들을 위해 써 달라며 막내아들 돌잔치에 받은 금반지와 팔찌 등을 속초시에 전달한 인천의 한 시민, 용돈과 세뱃돈이 담긴 돼지저금통을 맡겨온 어린이, 이들이 모두 모두 다 위대한 영웅들이다.

이번 강원 산불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서울, 경기, 인천, 부산, 울산, 대구, 대전, 세종, 충남ㆍ북, 경남ㆍ북, 전남ㆍ북, 강원 등 전국에서 소방차 872대와 소방관 3,251명, 진화 헬기 51대로 단일 화재 사상 최대 규모의 장비와 인력이 동원됐다고 한다. 국방부도 군 항공기 32대, 소방차 46대, 장병 16,500여 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돕고, 대피 중인 주민들을 위해 6,800명분의 전투식량을 지원했다. 

사흘 동안 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는 폐허였다. 고성ㆍ속초 1,227㏊, 강릉ㆍ동해 1,260㏊, 인제 345㏊로 모두 2,832㏊의 산림이 불타고 566세대 1,289명의 이재민과 고성ㆍ속초에서 2명의 사망자, 강릉에서 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총 피해액 1,291억 원 중 사유시설 피해는 주택(553동), 농업ㆍ축산ㆍ산림시설(195개소) 등 4,461건, 303억 7,800만 원에 달하고, 공공시설도 산림(11개소), 문화 관광(31개소), 군사(94개소), 상ㆍ하수도(48개소) 등 219개소, 988억 3,800만 원에 달하는 피해를 보았다.

정부가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이어 복구비 1,853억 원을 확정하고 이와는 별도로 산불 화재 대응 인력과 장비를 확충하기 위해 97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세웠다고 한다. 주택이 전파된 이재민에게는 정부 지원금 1,300만 원, 지방자치단체(강원도) 지원금 2,000만 원, 성금 모금액 3,000만 원 등 총 6,300만 원을 지원하고, 반파된 이재민에게는 정부 지원금 650만 원, 지자체 지원금 1,000만 원, 성금 모금액 1,500만 원 등 총 3,150만 원을 지원할 예정이란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은 피해 주민들에게는 턱없이 미흡하기만 한 것이겠으나 중구난방, 주먹구구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던 정부의 당초 지원금이 이렇듯 커질 수 있었던 데는 국민 성금이 큰 몫을 했다. 4월 말 기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성금이 470억 원을 넘겼단다. 십시일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많은 이들의 정성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기적이다. 게다가 지금도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태고 있는 자원봉사자가 줄을 잇고 있으니 머지않아 곧, 상처 위에 새 살이 돋고 폐허 위에 생명의 꽃이 다시 피어날 것이다.

이옥경 편집장 (wawo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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