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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0-01-1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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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누구일까 14.원제 슬픈어머니김종윤 장편소설

기사입력 2011-03-1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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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식한테서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마 두 아들이 군대에 가서 보낸 몇 통과 어버이날 학교에서 단체로 보낸 것을 받아 본 것이 전부였으리라.

모두 마음에서 우러나왔다기보다는 숙제처럼 쓰여 진 것을 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로 시작된 편지를 읽을 때마다 세상의 눈이 온통 옥두에게로 쏠려있는 것만 같았었다.

쑥스러워서 평상시에는 못했던 말,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 말을 잘 안 들어서 죄송해요, 어머니 오래 오래 사세요……. 하는 내용들이 너무도 소중해 가슴에 품고 있다 힘들 때마다 한 번씩 꺼내 읽고는 했었다.

더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게 제 자식이 보낸 편지예요. 하면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펼쳐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보물과도 같은 편지였다.

그런데 명진은 어미의 그런 마음을 헤아려 다시금 편지를 써 준 것이다.

허벅지께의 통증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마도 명진은 여기까지 왔으면서도 섣불리 입에 올릴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을 편지로 대신했을 것이다. 엄마, 미안해요. 그리고 다시 살아 돌아오셔서 고마워요, 엄마…….

편지를 읽기도 전에 콧등이 시큰했다. 아무렴, 내가 왜 네 마음을 모르랴.

옥두는 편지를 조심스럽게 펼치면서 명진이 가슴으로 썼을 글자 하나하나를 미리 짐작해 보며 흐뭇해했다.

다행히 볼펜으로 써서 글씨가 번지지 않았다.

옥두는 일어서서 불 가까이에 편지지를 디밀고 읽기 시작했다. 옛날 호롱불 가까이에 앉아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했던 것처럼.

“글씨체가 이쁘기도 하지.”

옥두는 대견스러운 자식을 남에게 자랑하기라도 하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편지 머리말이 예전과 조금 달라져있었다. 예전에는 어머니, 라고 시작되었는데 이번에는 엄마, 라고 쓰여져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라는 호칭보다 엄마라는 호칭이 훨씬 다정하게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라고 부르면 이상하게도 뭔가 격식을 차려야 할 것만 같고, 그만큼 거리감이 느껴지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엄마라는 호칭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엄마, 보세요.”

옥두는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눈이 나빠 글씨가 잘 안보이기도 했지만 소리 내어 읽으면 한자도 놓치지 않고 다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그러나 두어 줄 읽다 말고 옥두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무너지듯 이불 위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엄마, 보세요.

엄마가 다시 살아 돌아오셔서 고맙다는 말을 할 줄 알으셨겠죠?

물론 고맙지요. 하지만 그 고마움은 엄마한테가 아니라, 엄마를 다시금 세상에 돌려보낸 염라대왕에게 표하는 인사입니다.

 

왜냐구요? 만약 엄마가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나는 그들을 죽어서도 용 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거든요.

제가 뭐라고 기도했었는지 들어보실래요?

염라대왕님, 만약 우리 엄마를 그대로 데리고 간다면 나는 죽어서라도 당 신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분명히 인간이 해야 할일이 있기 마련이지요.

만약 그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면 절대로 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죽 어서도 안 되거든요.

어떻게 할 일도 다 못했는데 편안하게 땅 속에서 잠이나 잘 수 있게 할 수 있죠?

당신의 맘에 든 사람이 있다면 특혜처럼 데리고 갈 수야 있겠지요. 당신 도 감정이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 엄마는 당신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잖아요.

자식인 나도 원망하고 있는데 당신이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거든요.

그래도 당신이 우리 엄마를 데리고 간다면 말했듯이, 나는 죽어서라도 당 신을 찾아가 죽여 버린다고 할 겁니다.

우리 가슴의 한은 그대로 있는데 그런 멍청한 짓거리를 했으니 용서 할 리가 없지요. 절대 제 가슴에 남아있는 응어리를 풀기 전에, 당신은 우리 엄마를 데려가서는 안 됩니다. 암요, 절대 그래서는 안 되지요!

후후, 다행히 염라대왕은 내 부탁을 들어주었어요. 그래서 나는 다시 염 라 대왕님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이제 제가 엄마 죽음마저도 용서할 수 없었던 까닭을 설명할 필요가 있겠 군요.

우선 아버지 이야기부터 해야겠어요. 용서할 수 없기로는 아버지도 마찬 가지였으니까요.

아버진 우리에게 폭군 역할밖에 한 것이 없었지요.

잘못 태어난 당신 인생까지도 우리에게 화풀이를 다 했으니까요. 가난, 무식, 불행한 환경, 고생까지도 몽땅 우리에게 풀었습니다. 피해자이기는 우리가 더한데도 말입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목욕 사건이었습니다. 엄마도 생각나시죠? 서울로 처음 이사 와 미아리 언덕배기집에서 살 때 말이에요.

여름이었어요. 너무도 더워 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지 경이었지요.

하지만 우리 식구는 아버지 눈치 때문에 목욕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지 요. 하지만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잠든 틈에 마당 으로 나가 몸에 물을 끼얹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방문이 확 열리면서 호 랑이 같은 아버지가 뛰어나오시더군요. 지금도 아버지 음성이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야, 이년아, 물 작작 좀 써! 네년 때문에 물세가 얼마나 나가는지 알어?

부모가 돼서, 다 큰 딸년이 옷을 벗고 목욕을 하고 있는데, 그럴 수는 없 었습니다.

너무도 무서워 수돗가에 웅크리고 있는데 엄마는 또 어떻게 했는지 알아 요? 잊어 버렸다구요? 흥, 엄마는 가해자이고, 나는 피해자이니까 당연히 잊어버렸을 테죠.

엄마는 다짜고짜 달려 나와 내 머리채를 낚아챘어요. 얼마나 세게 당겼 는지 저는 맨바닥으로 넘어지고 말았죠. 꽈당.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말 입니다. 엄마는 넘어진 저를 향해 악을 썼어요.

네년 때문에 내가 다리도 못 뻗고 자! 차라리 나가 뒈져! 뒈지라구!

왜, 뭘 잘못했길래 엄마가 내게 그런 포악을 부려댔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엄마를 보고 가만있을 아버지가 아니었지요. 집안 살림살이가 몽땅 마당으로 내팽겨 쳐지기 시작했어요.

잠들었던 이웃들이 하나 둘 불을 켜고 우리 집을 기웃거리기 시작했어요. 옷 하나 걸치지 않았는데 어디로 숨을 곳도 없었습니다.

너무도 무서워, 아니 옷이라도 입을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뭐가 있었겠어요?

계속…


 

최솔향기자 (wawo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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